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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롯과 벌레, 12:20~25 > 나의간증

헤롯과 벌레, 12: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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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4-06-24 11:53 조회 2,53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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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이 달리니 생각이 이전처럼 주밀하지 않다." 성군 세종대왕의 쇠약함의 자기 고백입니다.
결국 54세로 승하했습니다.
성군의 여러 병 중, 특히 당뇨가 심했나 봅니다.
요즘은 문제가 아닌데 그때는 심각했습니다.

기고만장하던 헤롯의 종말을 봅니다.
행12: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어떤 벌레인지는 모릅니다. 생각컨대 기생충 같습니다.
그의 모습을 대조한 구절이 있습니다. 성령의 의도라고 믿는데
행12:21~22)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한대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하거늘
비록 로마황제의 하수인이어도 그 시대에서는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벌레에 먹혔습니다.
죽어 묻히면 누구나 벌레에 먹히는 것과는 다른 양상입니다.
왕이라 할지라도 불신의 왕이라면 하나님께는 벌레보다 못한 존재임을 보여주는 구절 아닌가요?
감옥까지 천사가 심방와 준 베드로와 비교해 보십시오.
그런데도 성도들이 세상적 관점으로 베드로보다는 헤롯에 매력을 느끼고 추종하고 있는 경향이 짙습니다.
출세가 무엇인가요? 잘먹고 잘사는 모양이 무엇인가요?
주를 잘섬겨, 복음을 위해서는 고난도 은혜이다는 모습인가요? 아니면
헤롯왕처럼 홍의를 입고 큰소리치며 자자손손살겠다는 것인가요? 후자의 경우가 큽니다.
기독교의 세속이 여기서 비롯되었습니다.

세속과 하나님의 영광과는 정반대입니다.
세속은 이미 예비된 심판과 유황불에 내던져진 신세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영광은 영원합니다.
누구는 인생은 줄을 잘 서야 된다고 했는데 선 줄을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끝이 보이나요?

야망은 탐욕입니다. 위험한 목표입니다. 여기에서 많은 인생이 희생되었습니다.
그들의 종말을 보십시오. 잘 죽지도 못했지만 죽어서도 편치 못합니다.
조조의 무덤은 아직도 모릅니다. 후대에 파헤쳐질 것을 염려해서 조조 자신이 여기저기 가묘를 만들어 혼란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지략가다운 발상이라도 죽을때에 이 생각을 했다는 자체가 우울합니다.
소망은, 다수의 바람입니다. 미래의 희망입니다. 희생이 값있습니다.
현충원의 순국자들, 우리 평화와 통일의 밑걸음입니다.

좋은 신앙은 야망을 부추키지 않습니다. 소망을 일구어 냅니다.
성도가 왕이 될 수도 있고 황제가 돨 수도 있습니다만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으로 해야합니다.
신앙의 변절은 처음부터 크게 오지않습니다.
어느 날 목적이 수정되고 그 다음 목표가 달라지고 마침내 변절이 됩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하나님은 하나님의영광을 지키시고 변호하십니다. 속물된 인생들이, 굳세지 못한 믿음의 성도들이
세상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탈하다간 헤롯꼴이 됩니다.
아니니아와 삽비라의 죽음이 교회를 향한 경고였다면, 헤롯왕의 하찮은 벌레로 말미암는 죽음은
세상과 국가와 정부를 향한 경고입니다.
로마가 망했고 나찌당이 망했고 일본이 패전했고 공산당이 망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도 머지않았습니다.

아름다운 생애는 아름다운 옷이 아닙니다. 권세자가 되는 일이 아닙니다.
주와 동행하는 일입니다. 고달파도 주의 의을 이루는 사람이 되는 일입니다.
이들에게는 종말이 아름답습니다. 눅16: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하나님은 헤롯을 비웃었습니다. 복음의 걸림축을 제거하시므로 교회의 손을 들어주셨습니다.
행12: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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