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제일교회
홈로그인

주의 말씀, 행13:49~52 > 나의간증

주의 말씀, 행13:49~52

페이지 정보

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4-06-25 13:40 조회 3,977회 댓글 0건

본문

사도 바울이 전한 말씀은 사람의 말이 아닌 주의 말씀으로 인정받아 전해졌습니다.
행13:49)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전쟁이나 기근시에는 초근목피로 연명을 합니다.
말씀도 기갈인 때가 있습니다.
시대적로 박해나 말씀의 대언자가 없어 품귀현상이 일어나면 그렇습니다.
아마도 이때는 정보가 풍성하지 않을때니 낯선이의 말이라도 듣고자했고,
그러나 그 말씀에 신적권위가 덧붙여져 영적기갈에 단비가 되었으리라 여겨집니다.
종종 생각해 봅니다.
현대에 사도바울이 등장해서 설교하면 어떨까? 과연 하나님의 말씀이라면서 받고 두루 퍼질수 있을까?
예수님도 이런 경우를 당했습니다. 고향에서 배척 당했기 때문입니다.
현대는 지식,정보의 시대입니다. 작은 우리나라는 IT강국이기에 더 심화되었습니다.
버스에도, 엘리베이터 안에도 뉴스가 나오고 행인은 이어폰을  꽂고 있습니다.
손안의 스마트폰은 온갖 분야를, 실시간으로 뉴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교회도 많습니다.
관련 경건서적도 넘칩니다. 복음방송은 어떤가요? 셀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홍수때에 진작에 마실 물이 없듯이 복음이 결여된 시대임은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식과 정보화 시대에도 확실합니다. 주 예수가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이 권위를 입기 위해선, 설교자가 성의를 입고, 특별한 설교단에서 설교함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설교자와 앞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성도의 삶입니다.
믿음은 말씀과 삶을 부합한 정도로 증명되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이 성의나 특별한 설교단이 없어도, 비록 낯선 나그네의 입술로 증거된 말씀임에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임받은 것은 성령의 강력한 감화와 함께 말씀에 부합된 삶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말하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삶을 살고, 심판을 말하면서 두려움이 없고,
내세를 말하면서 현세에 집착하고, 믿음의 의를 말하면서 돈을 사랑한다면 말씀의 권위는 없어집니다.
여기에 성령의 신적 권위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현대 성도들은 그렇습니다. 이러한 자기 모순, 자기 합리화로 무장했기에, 그러면서 남보고
믿으라하니 세상은 어리석다고 하며 비웃습니다.
주님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누누히 말씀했지만, 우리는 두 주인을 곧잘섬기며 현세에서도
잘살고 죽어서도 천국가려는 자세를, 좋은 믿음인 냥 호도하고 있습니다. 착각 아닌가요?
과연 그럴까요? 그럴 수 있다고 믿나요? 아, 있습니다. 먼저 주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라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당치않습니다.

우리나라 꿀은 믿을게 못됩니다. 양봉업자들이 아무리 좋은 꿀이라고 선전을 해도, 농협까지 나서도
소비자는 강한 불신을 갖고 있습니다.
그 원인은 과거의 양봉업자들이 부당거래로 신뢰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돈 몇푼에 불량품을 만든것이 전체 양봉업자에 미쳤고 외면받아 양봉산업이 서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이런 경우 얼나나 많은가요? 정량을 속이고, 산지를 속이고, 품질을 속이고, 이 탓은 짝퉁을 찾는 구실도
만들었습니다. 속을 가짜라면 처음부터 가짜를 구매하겠다는 것입니다.
참기름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참기름인가요? 진짜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국산참깨로 짠기름이 없답니다.
그러니 주부들은 아예 중국산을 씁니다. 어차피 속을바에는,,속지않겠다는 의지입니다. 나무랄 수 없습니다.
똑똑한 소비자들의 현명한 선택입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많이 당했습니다. 교회도 같다고 여깁니다.
우리의 믿음의 내용도 불량품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교회안에서 조차 설교를 주의 말씀으로
받지 않습니다. 설교자를 불신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에서는 이슬람교를 비교적 신뢰해서 한국 이슬람사원이 증원되었습니다.
개교회중심의 기독교보다는 천주교회를 신뢰해서 기독인이 그 쪽으로 개종하는 양상도 보입니다.
불교는 종교성이 있어보여 신뢰를 받고있습니다만 성도을 향해서는 "아직도 개독이냐?" 할 정도 입니다.
불신이 큽니다. 목회자의 윤리문제, 대형교회의 후임목사 아들세습, 이웃을 외면한 대형교회당 건축,
성도간의 분쟁, 정권에 집착등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처럼, 이 불신을 제공한 작은 여우들입니다. 아니 공룡들입니다.

반면 교회는 빈자리를 메우려고 갖은 수단을 동원합니다.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사람만 모으면 됩니다.
담요주고,우산주고, 차잔셋트주고, 궁여지책입니다. 주의 말씀의 권위를 스스로 헐고 있고,
주의 몸된 교회임을 애써 부정하는 짓을 골라하고 있습니다.

주의 말씀의 권위는, 전하는 자나 듣는 자가 삶에 부합시키는 일입니다.
이 일에 증거를 얻을때 교회도 주님이 계신 권위를 얻습니다.
행13: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유대교가 왜 핍박을 했나요? 유대인들이 왜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그 지경에서 쫒아냈나요?
이 권위의 위험성과 그 파장을 염려해서 입니다. 진정한 교회의 모습 아닌가요?
이때 사도들은 어땠나요? 기쁨과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왜요? 예측한 일이고 합당한 권위의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두려워하지 않는 교회는 헛깨비이고 자신도 믿지않는 말씀은 낭설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