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의 능력,행16:16~34
페이지 정보
본문
각광받고 있는 노래방과 종사원들은 셀수가 없이 많습니다.
일본의 '가오케스트라'의 문화가, 부산 해운대에서 '노래방'으로 한국화 된 후 전국과 세계로 퍼졌습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는 복음 보다 신속하게 퍼졌습니다. 시대의 산업이기도 합니다.
사회학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노래방의 숫자,평수, 매출,지하와 지상의 숫자, 술소비량, 평균 소비금액, 년령의 애창곡,도우미의 출신과 연령과 이유,많은 간판등, 괜한 짓인가요?
앞선 교회에서 우리 성도들에게 리서치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찬송가에 대해서는, 즐겨하는 찬송가는 1위 405장, 2위 455장으로 나왔습니다.
찬양과 ccm 과는 현저히 다릅니다. 찬양의 대상은 주이며 예배용입니다만 ccm은 자신을 비롯한
사람이고 예배용이 아닙니다. 이제는 찬양도 고유한 한국적인 바가 요청됩니다. 서양의 군가나 민요가 많기
때문입니다.
최근 어느 목사님은 트롯트에다 찬양 가사를 입혔는데 너무 익숙한 장르라서 그런지 경건치 못했습니다.
그러면 반론을 제기할 것입니다. "찬양은 가사냐, 작곡이냐?" 둘 다이면 좋습니다.
부흥시대에는 찬양도 경건성이 깊었던 반면 유흥의 시대에는 음악성과 예술성만 부각되는가 봅니다.
찬양은 예배를 준비하면서 부르는 성도의 노래가 아닙니다.
찬양은 늦게오는 성도를 기다리며 부르는 노래도 아닙니다.
찬양에는 내가 좋아하는, 소위 18번이 있어서는 않됩니다.
찬양은 나를 위한, 사람들을 위한 노래가 아닙니다.
찬양은 흥을 돋우는 노래도 아닙니다.
찬양은 주께 향한 고백이며 찬미입니다. 믿음과 성령의 충만함이 기초되어야 합니다.
현재 우리 교회는, 연주기에 맞추어 찬양을 하곤합니다. 큰소리보단 가급적 작게 불러야 합니다.
아파트라는 공동의 주택이기에 이웃에 대한 배려입니다.
그러나 늘 주께 죄송할 따름입니다.
성경에는 찬양과 모습이 나옵니다.
출15장에는 출애굽을 이룬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나옵니다. 민족의 합창입니다. 장관이었을 것입니다.
스4장에는 황폐해진 성전을 보며, 건축을 앞둔 찬송이 있습니다.
마26장에는 유월절 만찬 후에 찬미하며 갈람산으로 오르기도 했습니다.
본문은 두 사도가 두들겨 맞은 후, 감옥에서의 찬송이 나옵니다.
이를 보면 찬송은 좋아서, 형편이 되어서만의 즐거움이 아닙니다.
찬송은 음률의 기도입니다. 때론 탄식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을 향하지 않은 오직 주께 향한,
시33:1)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 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다
이 찬양에는 특별함이 있습니다.
* 극진히 찬양해야 합니다.시96:4)여호와는 광대하시니 극진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 큰소리로 해야합니다.행16;25)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 찬양에는 언약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소는 '찬송 중에 계심'입니다.
*성도된 우리는 찬송을 위해 부름을 받았습니다.사43:21) 이 백성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
* 하나님은 찬송을 우상에게 빼앗기지 않으십니다.사42:8)~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이 찬양에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행16:26)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노래방은 비용을 지불합니다. 어찌보면 세상이 우리들 보다 대단합니다.
우리의 찬양은 비용이 없습니다.
세상이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를을부르는 경우는 적습니다 그러나 성도가 세상노래를 부른 경우는 허다합니다.
세상에게 진 모습의 하나 아닐까요?
찬양은 귀로 듣기보단 영혼에서 마음으로 그리고 입술로 불러야 합니다.
멋지게 부르기 보단 잘 불러야 할 것입니다.
일본의 '가오케스트라'의 문화가, 부산 해운대에서 '노래방'으로 한국화 된 후 전국과 세계로 퍼졌습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는 복음 보다 신속하게 퍼졌습니다. 시대의 산업이기도 합니다.
사회학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노래방의 숫자,평수, 매출,지하와 지상의 숫자, 술소비량, 평균 소비금액, 년령의 애창곡,도우미의 출신과 연령과 이유,많은 간판등, 괜한 짓인가요?
앞선 교회에서 우리 성도들에게 리서치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찬송가에 대해서는, 즐겨하는 찬송가는 1위 405장, 2위 455장으로 나왔습니다.
찬양과 ccm 과는 현저히 다릅니다. 찬양의 대상은 주이며 예배용입니다만 ccm은 자신을 비롯한
사람이고 예배용이 아닙니다. 이제는 찬양도 고유한 한국적인 바가 요청됩니다. 서양의 군가나 민요가 많기
때문입니다.
최근 어느 목사님은 트롯트에다 찬양 가사를 입혔는데 너무 익숙한 장르라서 그런지 경건치 못했습니다.
그러면 반론을 제기할 것입니다. "찬양은 가사냐, 작곡이냐?" 둘 다이면 좋습니다.
부흥시대에는 찬양도 경건성이 깊었던 반면 유흥의 시대에는 음악성과 예술성만 부각되는가 봅니다.
찬양은 예배를 준비하면서 부르는 성도의 노래가 아닙니다.
찬양은 늦게오는 성도를 기다리며 부르는 노래도 아닙니다.
찬양에는 내가 좋아하는, 소위 18번이 있어서는 않됩니다.
찬양은 나를 위한, 사람들을 위한 노래가 아닙니다.
찬양은 흥을 돋우는 노래도 아닙니다.
찬양은 주께 향한 고백이며 찬미입니다. 믿음과 성령의 충만함이 기초되어야 합니다.
현재 우리 교회는, 연주기에 맞추어 찬양을 하곤합니다. 큰소리보단 가급적 작게 불러야 합니다.
아파트라는 공동의 주택이기에 이웃에 대한 배려입니다.
그러나 늘 주께 죄송할 따름입니다.
성경에는 찬양과 모습이 나옵니다.
출15장에는 출애굽을 이룬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나옵니다. 민족의 합창입니다. 장관이었을 것입니다.
스4장에는 황폐해진 성전을 보며, 건축을 앞둔 찬송이 있습니다.
마26장에는 유월절 만찬 후에 찬미하며 갈람산으로 오르기도 했습니다.
본문은 두 사도가 두들겨 맞은 후, 감옥에서의 찬송이 나옵니다.
이를 보면 찬송은 좋아서, 형편이 되어서만의 즐거움이 아닙니다.
찬송은 음률의 기도입니다. 때론 탄식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을 향하지 않은 오직 주께 향한,
시33:1)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 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다
이 찬양에는 특별함이 있습니다.
* 극진히 찬양해야 합니다.시96:4)여호와는 광대하시니 극진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 큰소리로 해야합니다.행16;25)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 찬양에는 언약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소는 '찬송 중에 계심'입니다.
*성도된 우리는 찬송을 위해 부름을 받았습니다.사43:21) 이 백성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
* 하나님은 찬송을 우상에게 빼앗기지 않으십니다.사42:8)~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이 찬양에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행16:26)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노래방은 비용을 지불합니다. 어찌보면 세상이 우리들 보다 대단합니다.
우리의 찬양은 비용이 없습니다.
세상이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를을부르는 경우는 적습니다 그러나 성도가 세상노래를 부른 경우는 허다합니다.
세상에게 진 모습의 하나 아닐까요?
찬양은 귀로 듣기보단 영혼에서 마음으로 그리고 입술로 불러야 합니다.
멋지게 부르기 보단 잘 불러야 할 것입니다.
- 이전글귀신 들린 여종, 행16:16~18 14.07.02
- 다음글루디아,행16:11~15 14.07.0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