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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란노 서원, 행19:8~10 > 나의간증

두란노 서원, 행19: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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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4-07-09 15:04 조회 2,44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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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플검의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의, 원제는 "삶의 지혜는 대학 상아탑이 아닌 유치원 모래성에 있다." 입니다. 동의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어야 할 모든 내용은 어디에 있나요?
성경에 있습니다.
은사목사님 시대에는 목사가 되기위해선, 노회의 성경학교를 먼저 이수해야 했습니다. 성경이 신학보다 앞섰던
까닭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유학을 다녀와야 된답니다. 신학이 성경을 디자인합니다. 아니 재단합니다.

정조임금은 전국의 향원을 최소화 시키고 나머진 철폐했습니다. 학문 연구장이 아니라 정치인 배양소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조선의 문제를 옳게 본 것입니다. 선비가 주체인 국가였지만 당파싸움을 한 선비들이었습니다.

미국의 프리스턴신학교가 좌경화 되자 훼이스신학교가 생겨났습니다.
한국도 총신대학에서 모 교수의 모세 고등문서설이 잘못되자 이때다 싶어, 진리사수를 명분 삼아 숱한 총회신학교가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났습니다. 민주화 운동이 치열할 때는 신학생들도 운동권들이 생겨났습니다.
유치원이든, 신학교든, 대학원이든, 내용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가르치는 교수들이 중요합니다.
시대적으로 신학도 좌경화 바람이 불더니 이제는 보수신학과 신앙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어 다행이지만
그 폐해는 아직도 큽니다.

바울이 두란노 서원을 열었습니다.행19:9)~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여
당시에도 명문대학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곳에 비하면 학사도 없고 교수도 부족하고 컬리큐럼도 형편없었을 것입니다.그러나 있는 것이 있다면 바울의 열정있어 날마다 강론했고 배우는 자들의 열심도 한몫했습니다.
행19:10) 이같이 두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서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두란노 서원은 참 가난했을 것이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참 행복했으리라 여겨집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서원이 아닌 자연속에서 가르치셨습니다. "들에 핀 백합화를 보아라." 혹은 바닷가에 배를 조금 띄어놓고 설교하심을 듣게도 하셨습니다. 주로 실천신학 중심이었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엘리야나 엘리사가 운영하던 선지학교는 '도끼'도 없어 빌려와야 했고, 선지생도들은 가난하여 들외를 삶아 먹기도 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왜 주를 따르는 자들은 이토록 가난해야 했는지 모르지만, 굳이 이유가 있다면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위로 받겠네" 가 위안될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여" 했더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 이나 핼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입니다.
전하지 않으면 듣지못하고 듣지못하면 믿지못하고 결국 구원을 얻는 자가 없는, 이 영적순환이 옳게 시동된
것입니다. 이 두란노서원에서 얼마나 많은 주의 제자들이 나왔을까요?
그들은 흩어져, 고향에서도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비록 마음이 굳어 순종치않고 무리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며 혹은 두란노 서원에 강포를 이루었다할지라도
원장되시는 주와 교무처장이신 성령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목사들이 두란노서원을 찾습니다. 성경자체보다는 교회부흥의 속성방법을 배우는데 치중함은
유감입니다. 방법보다는 성경말씀이 내 인격화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두란노 서원을 생각하니 중국 변방의, 내가 오고가는 신학교와 학생들이 회상됩니다.
아파트에서 한달에 1주일씩 공부하며 먹고 자는 교육생활을 하다, 좀 나아져서 교회당 1층을 강의실로 사용하면서 비로서 숨을 크게 쉬고 찬송도 할 수있는 생활, 교재도 없어 잘들어야만 하고 교수도 부족해서 과목별이 아닌 둥친체 배워야하고, 그럼에도 평일에는 시골에서 목회를 해야하는 등, 이들이 있어 농촌교인들이 예배하며 주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가르치고 배워야됩니다. 가정도 공동체도 국가도 똑같습니다. 가르치는 데는 교육과 훈육이 있다지만
간판이나 시설보다 내용이 좋아야 합니다.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들이 열성과 열심이 있어야 됩니다.
두란노 서원은 돈이 앞서는 사설학원에서는 전혀 맛볼 수 없는 참 신학교의 모델입니다.

어느 기업가는 민족교육을 위해 '민족사관학교'를 세웠습니다. 1등 교사를 모시니 1등 학생들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기업가가 병들고 늙자 점차로 자본주의의 논리에 휩싸여 운영이 어렵게되어 있습니다.국가가 지원하면 좋을 듯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신앙에도 진정한 두란노서원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수년전 '목사사관학교'를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전액 장학생으로 성경을 확실히 깨우치고등, 그러나 마음뿐이고 말뿐이었습니다. 능력의 한계 때문입니다.

고 마틴로이드죤슨 목사님은 이런 학교를 세웠습니다. 학위가 없는 체계로 성경을 순수배우는,
한국으로는 학위가 없다면 오질않을 것입니다. 체면치레는 유교의 잔상입니다. "모르고도 아는 체, 없고도
있는체" 등, 학교도 속이야 어떻든 껍데기부터 번쩍여야 될 듯합니다.

아주 최근에 들은 얘기입니다. 신대원에 명문대학 출신들이 줄었답니다.
두란노 서원의 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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