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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자기변호, 행22:1~30 > 나의간증

바울의 자기변호, 행2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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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4-07-16 10:34 조회 2,33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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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다보면 별일을 다겪는다지만, 지금의 바울처럼 난처한 지경도 드물 것입니다.
성전에 들어갔다가 현장범처럼 잡히고 공안당국 까지 출동하여 압송되었기 때문입니다.
행21:34) 무리 가운데서 어떤 이는 이 말로, 어떤 이는 저 말로 부르짖거늘 천부장이 소동을 인하여 그 실상을 알 수 없어 그를 영문 안으로 데려가라 명하니라

당시의 현장분위기를 알 수 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행21:36) 이는 백성이 무리가 그를 없이 하자고 외치며 따라 감이러라

전혀 예측못한 상황이 돌발된 것입니다. 아니 이러한 충돌과 상황을 예측했기에 피해보고자 했었는데,
오히려 맞닺드려진 것입니다.

압송되는 중에 바울은 천부장에게 자기변론의 기회를 요청했습니다.
행21:39) 바울이 가로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성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바울의 자기변론은, 결과적으론 복음의 변증입니다. 이 변론에서 교훈얻는 바는 이처럼 내가 믿는 예수를,
나를 찾아 구원하신 예수를, 공개석상에서 그리고 난감한 상황속에서도 변증할 수 있겠냐입니다.
이는 구원이 확실하다는 반증이고, 신앙적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진술이기도 합니다.

소설의 3대 요소를, 인물,사건,배경이라 합니다. 바울의 변론적 자기삶은 소설이 아님에도 이 요소에 부합됩니다. 소설같은, 1인칭 인물의 자신에게 주가 찾아온 사건과 배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물, 즉 자신에 대한 진술이 등장합니다.
행22:3~4)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게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
내가 이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사건, 주를 만난, 주가 찾아주신 은혜의 사건이 등장합니다.
행22:7~8)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아주 극적인 사건 아닌가요? 소설로 말하면 최고 등점입니다. 연이어 사건2가 등장합니다.
행22:15)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너의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되리라
여기서 유념할 것은 "증인이 되어라" 가 아닌 "증인이 되리라"입니다.
사건3이 등장합니다.
행22:21)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멀리 이방인에게로 가거라" 가 아닌 "보내리라"입니다.

바울이 주를 만난 사건의 주체는 주였습니다. 복음의 종된 소명도 주였습니다. 이방선교사도 역시 주였습니다.
바울에게는 일생변혁의 사건이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주가 오심으로 주전과 주후로 나뉘는 변혁을 맞이했습니다.
눅1:1)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인물도 마찬가지입니다. 혈통이나 출신이나 신분은 의미없습니다.
주를 만난 사건도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일한 것은, 만남과 복음의 빚진자로서의 소명은 있어야 합니다.

배경이 등장합니다. 배경을 봐서는 2부 3부가 연속 나올 장편의 구성이 마련되었기 때문입니다.
행22:22) 이 말하는 것까지 저희가 듣다가 소리 질러 가로되 이러한 놈은 세상에서 없이 하자 살려 둘자가 아니라 하여
행22:29) 신문하려던 사람들이 곧 그에게서 물러가고 천부장도 그가 로마 사람인줄 알고 또는 그 결박한 것을 인하여 두려워 하니라

군인도 후방의 참모형이 있고 전방의 야전군형이 있습니다. 야전군형은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타입입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잠시 참모형이 되었다가 다시 본래의 야전군형 으로 되돌아 오는가 봅니다.
행21:13)~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핍박과 고난은 이 영성을 깨우칩니다. 현대교회의 위기는 핍박과 고난을 두려워하는데서 자초합니다.
전투에는 영적이든 육적이든 두려워하면 집니다. 이제 바울은 공회 앞에도 세움을 받습니다.
행22:30)~ 그 결박을 풀고 명하여 제사장들과 온 공회를 모으고 바울을 데리고 내려가서 저희 앞에 세우니라
점점 더 강해 집니다. 바울답게 됩니다.믿음의 고백대로 처신하게 됩니다.
이 모습을 보고 배우는 일이 곧 사도행전의 유익입니다.

바울의 자기 변호는 수사학이나 웅변술이 아니었습니다. 믿음의 지식에 있었기에, 말은 좀 어눌했어도 논증이 되었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담대한 줄 믿습니다. 나를 찾아온 예수를 언제나 어디서나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충만함은 꿈속에서도,무의식속에서도 들어나기 때문입니다.
고후11:6) 내가 비록 말에는 졸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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