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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은 염병이라, 행24:1~23 > 나의간증

이 사람은 염병이라, 행2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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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4-07-21 09:37 조회 2,37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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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롯궁에서 5일를 기다리며 송사를 맞이할 바울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헤아려 봅니다.
고단한 몸이야 쉬었다한들 정신은 사납고 마음은 위축되었을 듯 싶습니다.
그럼에도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들의, 어떤 노력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하긴 앞서 서원한 사람들을 데려다가
결례를 행하라면서 그들의 머리깎는 비용도 대신 내줄 줄 모르는 막힌(?)지도자들이었으니 오죽했으리요?

그럼에도 원치않는 송사가 드디어 시작되었습니다.
행24:1~2)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소하니라
바울을 부르매 더둘로가 송사하여 가로대

일종의 맞짱입니다. 유대교와 기독교간의, 그러나 유대교는 막강한 팀을 짰습니다.
'대제사장아나니아' '어떤 장로들' '변사 더둘로'
여기에 비하면 바울은 홀로입니다.

이런 모습은 소위 보수의 문제입니다. 진보든 좌파든 저들은 언제나 적극적입니다. 이기기 위해선 거짓도 선동도
서슴치 않고 비용이나 인원동원도 곧잘합니다만 보수라는 집단은 항상 소극적입니다. 말만 살아있지 행동하지 못합니다. 세상정치도 그렇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몇년전 모 이단교회에서 자신들의 집회를 잠실 펜싱경기장에서 갖는다면서 대대적 홍보를 한적이 있었습니다.
신문과 버스와 육교에까지 나팔을 불며 옥외광고를 했습니다. 심지어는 기성 전통교회 앞에까지 홍보물을 붙였습니다. 그런데 기성교회들은 잠잠했습니다. 싸움을 걸어와도 겁을 먹었는지 아님 싸울 가치조차 못느꼈는지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이러기를 수년동안 했습니다. 교회협의회도,한기총도, 지역교회연합회도 비겁해 보였습니다. 침묵해서 이길 수는 없습니다.

이단들의 적극적인 공격을 보십시오. 반면 기성교회의 방어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결국 저들은 흥하는 반면 우리들은 쇠하고 있습니다.

유대교는 변사까지 고용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나옵니다만 총독 베스도까지 정치적으로 회유합니다.
행25:2~3)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 쌔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겨 보내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라
늘 우리는 주의 말씀을 명심해야 합니다. 마10:16)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 처럼 순결하라"

"주를 믿기에 기도만 한다?" 아닙니다. 믿기에 기도했으면 그 "아멘'의 책임을 감당하고자 행동해야 합니다.
종교개혁도 이 행동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하신다?" 맞습니다. 그러나 내가 일어날 때 하나님의 뜻은 지금부터 이루어 집니다. 이런면에서 어떤 보수든 보수는 일찍이 죽었습니다. 말만 앞서니 당파만 늘었습니다. 좋은 진리를 갖고도 전술에서 밀리니 전략이 부족한 것입니다.

바울을 향한 변사의 공격은 대단합니다. 아닌 벨릭스를 향한 아부부터 시작합니다.
행24:3)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민족이 당신의 선견을 인하여 여러 가지로 개량된 것을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감사무지하옵나이다

행24: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
행24:9) 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

그 좋은 진리를 갖고도 함께하지도 못한 지도자들의 전략무능으로 바울은, 기독교는 만신창이가 되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어디있나요? 베드로는 어디에 있나요? 아닌 것을 갖고도 광장으로 촛불을 들고 나올 때에, 보수는 무엇했나요? 이단들이 그처럼 설치는데도 교회지도자들은 어디 있나요?

역사의 참 교훈은, 반복되는 역사의 교훈을 보고도 교훈 받지않는 교훈입니다.
싸울때는 아군들이 함께라도 있어주어야 합니다. 약할수록 무리지어 살도록 섭리하심이 여기에 있습니다.
바울은 혼자 싸우고 있습니다. 싸움보다 혼자라는 외로움에 실망될 듯 싶습니다.
복음의 선교사가 영적 검투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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