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을 얻은 후에, 행28: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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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를 향해서 가는 길은 참 험했습니다. 영광의 사지를 향한 길이였기에 멀고도 사나웠나 봅니다.
유라굴라 광풍에서의 구원은 임마누엘을 실감했을테고, 영성은 더 풍성해졌을 듯합니다.
전장에서 돌아온 군사는 사기충천하고, 고난을 겪은 성도는 정금신앙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바울과 그 모든 동선자들은 한 섬에 닿았습니다. 물론 예정하지 않던 곳이며 일이였습니다.
행28:1) 우리가 구원을 얻은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토인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비가 오고 날이 차매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인생살이의 축소판입니다. 무엇인가요? 사건의 연속이고 희비가 교차되곤 합니다. 불행이 많으면 비극살이가 되고 행복이 많으면 행복살이가 되는데 목회나 선교는 비극이 많다가 끝물에야 해피엔딩하는가 봅니다.
바다에서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던 저들이 땅을 딛고 영접을 받았습니다. 꿈같은 일이란 이런 경우 아닌가요?
그러나 이 행복도 잠깐, 다시 일이 터졌습니다. 행28:3) 바울이 한뭇 나무를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을 인하여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섬주민들의 반응은 지극히 정상적이었으나 재미있었습니다. 행28:4)~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원을 얻었으나 공의가 살지 못하게 하심이로다 하더니
행28:6)~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려 생각하여 말하되 신이라 하더라
이들은 사실의 눈으로만 본 것입니다. 진실의 눈으로 보았다면 당황하지 않았고 돌려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는 사실의 눈으로 뵐 수 없습니다. 믿음이라는 진실의 눈을 통해서만 뵐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런 사실적인 사람들이 많다면 어떨까요? 바울은 언제나 죽어야 할 죄인입니다. 세상은 언제나 이 모양입니다. 이 다수가 어거하며
이 다수가 자기들 같은 지도자를 세워놓고 자기들의 편견을 제도화나 진리화 시키려 합니다.
백인종이, 흑인종을 군박했습니다. 자기 눈들의 편견대로 였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인류는 모두 한 혈통으로 지음받았습니다. 진실의 눈은 주가 뜨게 해줍니다. 천국과 지옥, 심판과 상급도 믿고 바라보며 즐거워 할 수 있습니다. 거인국에서 걸리버가 고생을 했듯이, 소인국에서 걸리버가 영웅이 되었듯이, 주와 성경이 아닌 지식과 안목은 춤을 춥니다. 우리 신앙의 뿌리는 감정이나 풍습이나 역사가 아닙니다. 정경(Canon)인 주의 계시에 건축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철학위에 세워지고, 다수나 기득권위에도 세워지니 교회가 허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하한 바울을 죄수라 할 때보다 신이라 할 때에 권위를 얻었습니다.행28:7) 이 섬에 제일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유숙하게 하더니
권위는 주변에서 신임하는, 세워주는 위상입니다. 어른의 권위, 선생의 권위, 법관의 권위,교회의 권위 등,
이 권위는 영향력을 옳게 발휘할 때에 얻습니다. "~답지 않으면" 세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딸아이가 세종대왕과 이순신장군과의 리더쉽의 차이를 물어왔습니다. 그리고 혼자 답을 했습니다.
"세종대왕은 집현전 학자들 경우 스스로 학문에 정진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준 리더쉽이고 이순신 장군은 몸소,앞서 행하므로 따르게 한 리더쉽이지요." 맞습니다. 대왕은 뒷에서 밀고 장군은 앞에서 끈 타입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리더쉽이 없으면 보이는데서는 해도 보이지 않으면 딴짓을 하기 쉽상입니다.
결국 리더쉽은 누가 세워주기 전에 내가 먼저 자신을 세워야할 품격입니다.
왜 리더쉽을 말하나요? 바울의 영성은 자연산 리더쉽이었기 때문입니다. 행28:9~10) 이러므로 섬 가운데로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것을 배에 올리더라
현대는 권위상실 시대라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어른들의 말도 서질않고, 선생의 매를 신고하고,등
인권만 중요시 여기다보니 권위는 보이질 않습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주의 몸으로써의 역할을 잊었기에, 권위는 잃어버린 바 되었습니다. 권위가 없으면 명이 서질 않습니다. 해이해 집니다. 신앙의 해이도 여기서 온 것입니다. 건물보다, 성도수 보다, 재정 보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영성, 세상이 두려워 할, 이끌수 있는 권위라 믿습니다.
유라굴라 광풍에서의 구원은 임마누엘을 실감했을테고, 영성은 더 풍성해졌을 듯합니다.
전장에서 돌아온 군사는 사기충천하고, 고난을 겪은 성도는 정금신앙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바울과 그 모든 동선자들은 한 섬에 닿았습니다. 물론 예정하지 않던 곳이며 일이였습니다.
행28:1) 우리가 구원을 얻은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토인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비가 오고 날이 차매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인생살이의 축소판입니다. 무엇인가요? 사건의 연속이고 희비가 교차되곤 합니다. 불행이 많으면 비극살이가 되고 행복이 많으면 행복살이가 되는데 목회나 선교는 비극이 많다가 끝물에야 해피엔딩하는가 봅니다.
바다에서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던 저들이 땅을 딛고 영접을 받았습니다. 꿈같은 일이란 이런 경우 아닌가요?
그러나 이 행복도 잠깐, 다시 일이 터졌습니다. 행28:3) 바울이 한뭇 나무를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을 인하여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섬주민들의 반응은 지극히 정상적이었으나 재미있었습니다. 행28:4)~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원을 얻었으나 공의가 살지 못하게 하심이로다 하더니
행28:6)~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려 생각하여 말하되 신이라 하더라
이들은 사실의 눈으로만 본 것입니다. 진실의 눈으로 보았다면 당황하지 않았고 돌려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는 사실의 눈으로 뵐 수 없습니다. 믿음이라는 진실의 눈을 통해서만 뵐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런 사실적인 사람들이 많다면 어떨까요? 바울은 언제나 죽어야 할 죄인입니다. 세상은 언제나 이 모양입니다. 이 다수가 어거하며
이 다수가 자기들 같은 지도자를 세워놓고 자기들의 편견을 제도화나 진리화 시키려 합니다.
백인종이, 흑인종을 군박했습니다. 자기 눈들의 편견대로 였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인류는 모두 한 혈통으로 지음받았습니다. 진실의 눈은 주가 뜨게 해줍니다. 천국과 지옥, 심판과 상급도 믿고 바라보며 즐거워 할 수 있습니다. 거인국에서 걸리버가 고생을 했듯이, 소인국에서 걸리버가 영웅이 되었듯이, 주와 성경이 아닌 지식과 안목은 춤을 춥니다. 우리 신앙의 뿌리는 감정이나 풍습이나 역사가 아닙니다. 정경(Canon)인 주의 계시에 건축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철학위에 세워지고, 다수나 기득권위에도 세워지니 교회가 허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하한 바울을 죄수라 할 때보다 신이라 할 때에 권위를 얻었습니다.행28:7) 이 섬에 제일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유숙하게 하더니
권위는 주변에서 신임하는, 세워주는 위상입니다. 어른의 권위, 선생의 권위, 법관의 권위,교회의 권위 등,
이 권위는 영향력을 옳게 발휘할 때에 얻습니다. "~답지 않으면" 세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딸아이가 세종대왕과 이순신장군과의 리더쉽의 차이를 물어왔습니다. 그리고 혼자 답을 했습니다.
"세종대왕은 집현전 학자들 경우 스스로 학문에 정진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준 리더쉽이고 이순신 장군은 몸소,앞서 행하므로 따르게 한 리더쉽이지요." 맞습니다. 대왕은 뒷에서 밀고 장군은 앞에서 끈 타입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리더쉽이 없으면 보이는데서는 해도 보이지 않으면 딴짓을 하기 쉽상입니다.
결국 리더쉽은 누가 세워주기 전에 내가 먼저 자신을 세워야할 품격입니다.
왜 리더쉽을 말하나요? 바울의 영성은 자연산 리더쉽이었기 때문입니다. 행28:9~10) 이러므로 섬 가운데로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것을 배에 올리더라
현대는 권위상실 시대라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어른들의 말도 서질않고, 선생의 매를 신고하고,등
인권만 중요시 여기다보니 권위는 보이질 않습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주의 몸으로써의 역할을 잊었기에, 권위는 잃어버린 바 되었습니다. 권위가 없으면 명이 서질 않습니다. 해이해 집니다. 신앙의 해이도 여기서 온 것입니다. 건물보다, 성도수 보다, 재정 보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영성, 세상이 두려워 할, 이끌수 있는 권위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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