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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 행28:16~31 > 나의간증

로마에서, 행28: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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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4-07-24 16:38 조회 2,40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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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 오면서 믿음의 형제들과 잠깐의 상봉을 가졌던 바울은 결국 로마에 입성했습니다.행28:16)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은 자기를 지키는 한 군사와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비로써 잠시나마 혼자만의 시간과 여유와 쉼을 누렸을 듯합니다. 어쩌면 주께서 장차 마주칠 일련의 핍박을 위한 사기진작의 시간을 주셨을 것입니다. 사회적으론 네로황제가 기독교를 향한 핍박이 광기을 부리던 전이였기에, 주께서 이런 때에 그를 숨기기 보단 들어내심은 무엇인가요? 행27:24)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이 광기 서린 가이사 앞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일이였습니다. 그 이유는 황제 한 사람은 물론 장차 가이사의 광기서린 박해에 순교할 많은 성도들을 위한 주의 권념이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라굴라 광풍은 이런 바울의 로마길을 막으렸던 마귀의 방해 공작일 수 있고, 그러했기에 주는 바울을 곁에서 보호하셨을 것입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아그립바왕의 "행26:32)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호소하지 아니하였더면 놓을 수 있을뻔하였다" 의 아쉬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석방조치가 되지않았음도 이때를 위함이요. 그동안 많은 자기변호과 복음증거 역시 황제 앞에서의 마지막 복음증거를 위한 '맹훈련'이었을 것입니다.
주는 미쁘시고, 주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이런 주의 대한 실감이 사무치지 않나요?

로마에도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로마가 중앙도시이다 보니 친로마유대인이었고 관료였던 것 같습니다.
행28:17)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모인 후에 ~
여전히 그는 자기변호를 합니다. 그러나 자기변호는 구실이고 목적은 복음 증거였습니다.
행28:20) 이러하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노니 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하여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바 되었노라

바울의 중심에는, 주, 그리고 동족, 그리고 제자들, 마지막으로 자신인 셈입니다. 대체로 큰 일을 이룩한 영웅들은 다 이래야 했나 봅니다. 독립운동가들도 나라만 생각했지 처자는 안중에 없었습니다.
존경하는 모신학대학교 총장님은 학교만 생각했습니다. 총장봉급도 학교발전 기금으로 내놓고 총장사택에 입주하면서는 개인 아파트를 팔아 또 학교에 기부했습니다. 유학중에 수고 많이 한 사모님은 결국 호강도 모른체 암으로 별세했습니다. 희생없이는 어느 발전이 없습니다. 현대의 기독교가 후퇴하는 이유는 희생없는 신앙탓이라 여깁니다. 예수믿어 덕 볼려는 심보와 예수위해 나 죽겠오.는 천양지차 아닌가요?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과연 우리는, 나는, 어느만큼 할 수 있을까요?

바울은 계속된 증거를 이루었습니다. 행28:23)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바울이 죄수의 신분이 되어야 할 이유를 아시나요? 자유인이었으면 이토록 왕성한 강론활동을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써 오히려 감시를 받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황제판결를 신청한 죄수 신분이기에 신체에 쇠사슬로 인한 제약은 받았으나 정해진 장소와 그 안에서의 활동에는 자유를 보장 받았던 것입니다.

밧모섬으로 유배간 요한은 감동을 받아 계시록을 썼습니다. 땜쟁이 존번연은 감옥에서 천로역정을 썼습니다.
물고기 뱃속의 요나는 심령부흥회를 했습니다. 그리고 응답받았습니다. 모회장 장로는 안양감옥 10년 생활에서 9천권의 독서와 튼튼한 몸을 만들었습니다.

안락함과 기름진 음식만이 신앙에 유익한 것도 은혜도 아닙니다. 바울은 이곳에서 이태를 머물면서 순교하기까지 주 동행을 실감했을 것입니다. 행28:30~31)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들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결국 여러 옥중서신도 여기서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디모데, 마가도 여기서 다시 만났습니다. 자기를 떠나간 사람들도, 귀한 동역자들도 여기서 헤아려 보았을 것입니다. 생애의 이런 휴가가 있었을까요? 그러나 자기의 소명과 마지막 운명도 감지했을 것입니다. 지금 바울이 순교한 곳에는 순교기념교회당이 세워졌답니다.
바울의 입상은 머리가 없는체 세워져있고 바닥의 머리상은 뒹구는 모양으로 있답니다.
바울을 처형한, 네로도 죽었습니다. 세상에는 바울을 본받아 '폴'이란 이름은 넘칩니다만 "네로' '가이사'는 없습니다.
바울은 순교 후 어디에서 머물고 있을까요? 네로는 어떨까요? 누가복음의 부자와 나사로가 대변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28장31절이 끝이 아닙니다. 계속 기록되어야 합니다. 오늘을 사는, 성령받은 우리 몫인 줄 믿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저 열방에서 수고하는 선교사들과 함께해야 합니다. 특히 북한선교와 중동선교는 참 어렵습니다.
명심합시다, 행28:28)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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