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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요나, 욘3:1~10 > 나의간증

외치는 요나, 욘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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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5-11-13 17:19 조회 2,06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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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안의 껌과 뱉은 껌은 형체도 속성도 맛도 다릅니다.
입안의 껌은 부드럽고 달콤하며 마음대로 빚어집니다만 뱉은 껌은 딱딱하고 쓴맛이 나고,, 합니다.

하나님의 손 안의 요나, 고난 받은 요나, 물고기 뱃속의 요나는 죽음의 요나였기에 입안의 껌같습니다.
이런 요나에게 하나님은 다시 말씀을 주셨습니다. " 3:1~2) 여호와의 말씀이 두번째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처음과 같은 말씀이 다시 임한 것인데, 즉 은혜도 다시 임한 것입니다.
이제 막 스올인 물고기 뱃속에서 출소한 요나는 순종적입니다. 아직은 입안의 껌 같습니다.
"3~4절)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극히 큰 성읍이므로 삼일길이라
요나가 그 성에 들어가며 곧 하룻길을 행하며 외쳐 가로되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진지하고 긴박한 모습입니다. 흔히 열정열정하지만 복음의 전도자들에겐 진지하고 긴박한 모습이 열정보다
낫습니다. 열정은 성향입니다만 진지함과 긴박함은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도 이런 모습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 하여금 돌탕에 맞아 죽은 줄 알아 버려졌지만 그는 살아나 그 몸과 그 모습으로 다시 성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행14:20,22) 제자들이 둘러 섰을때에 바울이 일어나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를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

모든 요나에게서 요청되는 ,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실종된 모습입니다.
생명을 다루는 의사는 언제나 진지해야 합니다. 급한 수술에 들어갈 때는 더 긴장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병원에 들렸다가, 나중에,,아님 몸이 회복된 후에,, 하지 않았습니다.

요나도 아니 하나님부터 그랬습니다. 요나는 씻거나 먹거나 쉬거나 하지 못했습니다.
메세지는 말만이 아닙니다. 표정, 몸짓, 복장이 다 포함됩니다.
메시지와 메신저는 달라도 요나는 하나님의 다가 올 심판의 메시지 자체가 되었습니다.
"4절) 요나가 그 성에 들어가며 곧 하룻길을 행하며 외쳐 가로되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그 모습이 놀랍기에 성의 반응이 놀랍습니다. 효과만점입니다.
"5~6절)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 지라
그 소문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으니라

소돔과 고모라 성읍은 물론 롯의 사윗들과 전혀 다릅니다. 사윗들은 심판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섭리인가요? 벌하기로 하셨고, 구원하기로 하심의 차이 인가요?
요나로써의 차이는 아닌가요? 어떤 요나인가,,의 차이? 농담처럼 외치진 않았을까요?

현대 성도들의 여하한의 모습에서 하나님 심판의 긴박함을, 절대적임을, 아님 임하고 있음을 인지할 수 있나요?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죄사함과 하나님과의 화목을 발견할 수 있나요?

현대는 자의든, 타의든의 요나 투성이 아닌가요?
혹 비둘기장을 보았나요? 수천마리가 모여 있으면 더럽고 시끄럽고,,그래서 요즘은 비둘기 처치를 한답니다.

그러나 중국의 비둘기는 주인이게 돈벌이가 된답니다.
비둘기를 날려 보내면 콩밭이나 콩창고에 가서 실컨 먹고 온답니다. 그러면 주인은 잿물을 먹여 토하게 하고 ,
배고픈 비둘기는또 날아가서 먹고 오고 하여,,그 콩이,, 콩값이 만만치 않답니다. 동물학대라고 어디는
펄쩍뛰어도, 중국에서 옛부터 전승된 사업이랍니다. 자식보다 난,  비둘기임은 틀림없습니다.

비둘기는,, 요나는 주인께 생산적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많을수록 민폐를 끼칩니다. 도시의 비둘기처럼,,

우리가 침묵하고 있다면 무슨 이유일까요? 우리가 침묵하는 동안 세상은 어찌될까요?
우리가 침묵하는 이유는, 입안에서 뱉은 껌 같아서는 아닐까요? 겸손을 잃은, 스올이란 물고기 뱃속을
잊은 탓은 아닐까요?
우리가 내가 침묵하는동안 세상은 죽어가는 이가 투성입니다.
"롬10:14~15)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임했듯이, 그래서 은혜도 다시 임했듯이,, 고난의 역사도 다시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요나에게, 직무유기한 요나에게,,

먼 땅을 향해 날아가는 요나도 있고 가까운 땅에 갈 요나도 있습니다.
모든 성도는 요나입니다.
앞선 고백처럼, 욘2: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늘 상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요나로 하여금 외치게하셨고, 그리고 그 성을 살리셨습니다.
10절)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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