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넝쿨 아래의 요나, 욘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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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조선족 목사님은 민족애가 강합니다.
약소민족으로써 중국에 살기에 주족인 한족으로 부터 차별을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떼놈들" 하며 원색적 표현도 하며, 그들에게 향한 전도는 아직 닫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은 애지중지합니다.
예수님은 열린 그리스도인데 그 예수를 믿고 따른다면서도 성도들은 닫힌 경우가 허다합니다.
긍정적으론 우리들의 연약함이지만, 실상은 죄성인 탓입니다.
여기에 비하면 사도바울은 주님따라 열린 성도였습니다.
"빌1:18)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4장의 요나도 편협적입니다.
복음적이지 못했다는 반증입니다.
애당초 니느웨를 거부했던 이유도 그렇고, 지금 그 성이 회개한 후 멸망받지 않은 것도 못마땅해 합니다.
"1~2절)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실컨 수고한 후에, 그 뜻대로 되었음에도 심히 싫어하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며, 이제는 자기생명을 거두어달라고 기도까지 하니, 대인배라도 소인배 심성이 있습니다.
형제애가 남다른 주교형제가 있었답니다.
동생주교는 형주교를 존경한다하며,,형주교는 동생주교가 자신보다 더 낫다고,, 칭찬 일색이었답니다.
그런데 동생주교가 먼저 추기경이 되자 교인들이 형주교에게 칭찬을 했답니다.
"주교님, 좋으시겠어요. 훌륭하신 동생을 두셔서,,이번에 추기경되셨으니 축하해요.. 우리에게도 영광이에요"
그러나 형주교는 발끈하며 " 그놈이 뭐가 훌륭해요? 형만한 아우가 없다는데,," 동생에 대한 시기와 질투가 폭발했던 것입니다.
요나의 투정과 하나님께 대한 화냄은 형주교와는 좀 다른 성격이긴 합니다.
복음을 전했던 의미가 그 성읍의 영혼들을 사랑해서가 아닌, 요나는 오직 고난을 피해, 하나님의 진노가 두려워 마지못해 했던 순종이요, 사역인 까닭입니다.
뭐든 억지로 하는 사람이 좋아서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좋아서 하는 사람은 사랑해서 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는 이치입니다.
어린이집 교사들의 학대사고가 종종 있습니다.
부모들에게 없는 아동학대가 있는 이유는 사랑이 없기때문입니다.
선교도 마찬가지 입니다. 주의 사랑, 마음이 없으면 한갖 비즈니스가 됩니다.
니느웨를 외치며 돌았던 요나의 사역은, 아무리 진지하고 아무리 긴박했다했더라도, 요나 자체가 심판의 메시지였다하더라도, 사랑이 없었기에 한갖 소리나는 구리요, 울리는 꽹과리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요나에게 물고기 뱃속과는 다른 수업을 하십니다.
바다에서, 캄캄한 중에 한 수업은 순종배우기 과목이었다면 이제 박넝쿨 아래의 수업은 사랑배우기 과목입니다.
보조 교사는 벌레입니다.
시기심으로 충만하여 앉아 있는 요나는, 요,,,나, 의 죄성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9절)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찌라도 합당하니이다.
누구든지 세상의 주인공은 자기입니다.
내가 옳으면 다 옳아야 하고 내가 싫으면 남들도 싫어야 합니다.
지독한 독선입니다.
요,,나, 의 특성이 이런것 입니다.
내가 으뜸입니다. 내가 중앙이 있어야 합니다.
죄는 SIN 인데, 그 중앙에 I 가 있습니다.
"사14:13~14)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죽음의 근원은 죄이고, 문제의 장본인은 요,,나 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큰 빛으로 임하였기에 산 것입니다.
성도의 모든 일상의 시작은 내가 아니라 주님이어야 하며, 그 사랑에 기인해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은 저도 사랑하시고,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은 저들도 구원하시길 원하십니다.
언제나 요나는 이 사랑을 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요나는 훌륭한, 그러나 꾸짖지 않으시는 스승이신 하나님으로 부터 사랑을 배웠을 듯 합니다.
요나 2서, 3서가 있었다면,, 니느웨에서 자리잡고 앉아 목회하는 요나나, 아님
다른 곳에서 자원하는 선교사 요나를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혹 요나 2서, 3서 그리고 요나 후서는, 나는 물론 이 시대의, 요나의 몫입니다.
우리는 하찮은 것들을 관심 갖고 아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혼을 찾으십니다.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모든 국가가 아닙니다. 족속입니다. 국가는 있다가 없어지는 따위의, 변동이 큰 정책이나 이념 그리고 국토 등
이라면 족속은, 사람이고 영혼이기 때문입니다.
약소민족으로써 중국에 살기에 주족인 한족으로 부터 차별을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떼놈들" 하며 원색적 표현도 하며, 그들에게 향한 전도는 아직 닫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은 애지중지합니다.
예수님은 열린 그리스도인데 그 예수를 믿고 따른다면서도 성도들은 닫힌 경우가 허다합니다.
긍정적으론 우리들의 연약함이지만, 실상은 죄성인 탓입니다.
여기에 비하면 사도바울은 주님따라 열린 성도였습니다.
"빌1:18)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4장의 요나도 편협적입니다.
복음적이지 못했다는 반증입니다.
애당초 니느웨를 거부했던 이유도 그렇고, 지금 그 성이 회개한 후 멸망받지 않은 것도 못마땅해 합니다.
"1~2절)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실컨 수고한 후에, 그 뜻대로 되었음에도 심히 싫어하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며, 이제는 자기생명을 거두어달라고 기도까지 하니, 대인배라도 소인배 심성이 있습니다.
형제애가 남다른 주교형제가 있었답니다.
동생주교는 형주교를 존경한다하며,,형주교는 동생주교가 자신보다 더 낫다고,, 칭찬 일색이었답니다.
그런데 동생주교가 먼저 추기경이 되자 교인들이 형주교에게 칭찬을 했답니다.
"주교님, 좋으시겠어요. 훌륭하신 동생을 두셔서,,이번에 추기경되셨으니 축하해요.. 우리에게도 영광이에요"
그러나 형주교는 발끈하며 " 그놈이 뭐가 훌륭해요? 형만한 아우가 없다는데,," 동생에 대한 시기와 질투가 폭발했던 것입니다.
요나의 투정과 하나님께 대한 화냄은 형주교와는 좀 다른 성격이긴 합니다.
복음을 전했던 의미가 그 성읍의 영혼들을 사랑해서가 아닌, 요나는 오직 고난을 피해, 하나님의 진노가 두려워 마지못해 했던 순종이요, 사역인 까닭입니다.
뭐든 억지로 하는 사람이 좋아서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좋아서 하는 사람은 사랑해서 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는 이치입니다.
어린이집 교사들의 학대사고가 종종 있습니다.
부모들에게 없는 아동학대가 있는 이유는 사랑이 없기때문입니다.
선교도 마찬가지 입니다. 주의 사랑, 마음이 없으면 한갖 비즈니스가 됩니다.
니느웨를 외치며 돌았던 요나의 사역은, 아무리 진지하고 아무리 긴박했다했더라도, 요나 자체가 심판의 메시지였다하더라도, 사랑이 없었기에 한갖 소리나는 구리요, 울리는 꽹과리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요나에게 물고기 뱃속과는 다른 수업을 하십니다.
바다에서, 캄캄한 중에 한 수업은 순종배우기 과목이었다면 이제 박넝쿨 아래의 수업은 사랑배우기 과목입니다.
보조 교사는 벌레입니다.
시기심으로 충만하여 앉아 있는 요나는, 요,,,나, 의 죄성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9절)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찌라도 합당하니이다.
누구든지 세상의 주인공은 자기입니다.
내가 옳으면 다 옳아야 하고 내가 싫으면 남들도 싫어야 합니다.
지독한 독선입니다.
요,,나, 의 특성이 이런것 입니다.
내가 으뜸입니다. 내가 중앙이 있어야 합니다.
죄는 SIN 인데, 그 중앙에 I 가 있습니다.
"사14:13~14)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죽음의 근원은 죄이고, 문제의 장본인은 요,,나 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큰 빛으로 임하였기에 산 것입니다.
성도의 모든 일상의 시작은 내가 아니라 주님이어야 하며, 그 사랑에 기인해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은 저도 사랑하시고,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은 저들도 구원하시길 원하십니다.
언제나 요나는 이 사랑을 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요나는 훌륭한, 그러나 꾸짖지 않으시는 스승이신 하나님으로 부터 사랑을 배웠을 듯 합니다.
요나 2서, 3서가 있었다면,, 니느웨에서 자리잡고 앉아 목회하는 요나나, 아님
다른 곳에서 자원하는 선교사 요나를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혹 요나 2서, 3서 그리고 요나 후서는, 나는 물론 이 시대의, 요나의 몫입니다.
우리는 하찮은 것들을 관심 갖고 아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혼을 찾으십니다.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모든 국가가 아닙니다. 족속입니다. 국가는 있다가 없어지는 따위의, 변동이 큰 정책이나 이념 그리고 국토 등
이라면 족속은, 사람이고 영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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