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2:19~23, 모르드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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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의 왕후 등극을 기록하면서 성령님은 모르드개를 잠깐 소개합니다.
에스더와의 관계와 에스더의 배후에서의 역할은 앞서 소개했지만 본문은 그의 성품과 신앙절개를 밝힙니다.
그가 머무는 곳은 대궐 문 앞이었습니다.
정보가 밝아 왕후후보자 모집에 에스더를 참여케했습니다.
그리고 왕에 대한 모반소식도 듣고 왕후된 에스더에게 귀뜸하여 왕후의 가치를 높여주었습니다.
2:21~22)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았을때에 문지킨 왕의 내시 빅단과 데레스 두 사람이 아하수에로왕을 원한하여 모살하려 하거늘
모르드개가 알고 왕 후 에스더에게 고하니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왕에게 고한지라
이는 에스더왕후와 계속된 소통은 물론이거니와 양육을 이루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고마운 것은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처녀때나 왕후때나 빛나게 해주고 있습니다.
또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왕에게 사실을 고하므로 모르드개를 빛나게합니다.
상호 위하고 있습니다.
바나바가 그랬습니다, 자신이 아닌 주변사람들을 세워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오직 한 사람, 하만과는 각을 날카롭게 세웁니다.
3:2) 대궐 문에 있는 왕의 모든 신복이 다 왕의 명대로 하만에게 꿇어 절하되 모르드개는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니
왜 그랬을까요? 민족이 다름도 있고, 포로됨도 있겠지만,
2:4) 날마다 권하되 모르드개가 듣지 아니하고 자기는 유다인임을 고하였더니 저희가 모르드개의 일이 어찌 되나 보고자 하여 하만에게 고하였더라
그러나 아하수에로왕를 살린 것을 보면 절대그렇지만도 않은 듯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만이 모르드개를 미워한 이유가 답이 됩니다.
2:5) 하만이 모르드개가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함을 보고 심히 노하더니
성향이 다른 탓입니다.
하만은 들어내는 과시형이라면 모르드개는 대궐 문에 앉아 있는 읍소형 아닌가요?
하만은 왕과 비슷해서 이기적인형이라면 모르드개는 이타적인형입니다.
자연 부딪칩니다.
그렇습니다. 하만이 육체로 난 성품의 모형이라면 모르드개는 성령의 성품입니다.
이 둘은 다툼이 있습니다.
롬8:5~7)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성경은 이런 경우를, 아브라함의 두 아들에게서 비유를 들었습니다.
이스마엘은 육체로 부터 난 아들이었고 이삭은 약속을 따라 난 아들이었습니다.
갈4:29) 그러나 그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니라
두 성품이 갈등하는 곳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누구든 온전해야 끝납니다. 갈등을 영적 전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잠시 후 하만에 의해서 유다인들이 죽게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니 이 전쟁은 혹은 이 갈등은 성도가 죽을때까지 겪는 일이기도 합니다.
분단의 국가에는 늘 티격태격하는 일들이 있듯이, 육체의 성품과 성령의 성품이 맞붙곤합니다.
이를 개인적으론 시험이라고 하여 "시험에 졌다." 혹은 "이겼다." 하기도 합니다.
사울은 진실되게 이 모양을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구원 받은 성도의 증표요, 성화되는 과정의 필연이기도 합니다.
롬7:20~21)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곡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롬7:23)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돈걱정은 합니다.
그렇다면 성도는 무엇이 있을까요? 이 갈등은 날마다 있어야 합니다. 성숙할 수록 시간마다 맞닫트리게 됩니다.
모르드개는 보혜사 성령의 모형입니다.
나중에 또 나옵니다만 말할 수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우리의 보혜사입니다.
에스더와의 관계와 에스더의 배후에서의 역할은 앞서 소개했지만 본문은 그의 성품과 신앙절개를 밝힙니다.
그가 머무는 곳은 대궐 문 앞이었습니다.
정보가 밝아 왕후후보자 모집에 에스더를 참여케했습니다.
그리고 왕에 대한 모반소식도 듣고 왕후된 에스더에게 귀뜸하여 왕후의 가치를 높여주었습니다.
2:21~22)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았을때에 문지킨 왕의 내시 빅단과 데레스 두 사람이 아하수에로왕을 원한하여 모살하려 하거늘
모르드개가 알고 왕 후 에스더에게 고하니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왕에게 고한지라
이는 에스더왕후와 계속된 소통은 물론이거니와 양육을 이루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고마운 것은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처녀때나 왕후때나 빛나게 해주고 있습니다.
또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왕에게 사실을 고하므로 모르드개를 빛나게합니다.
상호 위하고 있습니다.
바나바가 그랬습니다, 자신이 아닌 주변사람들을 세워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오직 한 사람, 하만과는 각을 날카롭게 세웁니다.
3:2) 대궐 문에 있는 왕의 모든 신복이 다 왕의 명대로 하만에게 꿇어 절하되 모르드개는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니
왜 그랬을까요? 민족이 다름도 있고, 포로됨도 있겠지만,
2:4) 날마다 권하되 모르드개가 듣지 아니하고 자기는 유다인임을 고하였더니 저희가 모르드개의 일이 어찌 되나 보고자 하여 하만에게 고하였더라
그러나 아하수에로왕를 살린 것을 보면 절대그렇지만도 않은 듯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만이 모르드개를 미워한 이유가 답이 됩니다.
2:5) 하만이 모르드개가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함을 보고 심히 노하더니
성향이 다른 탓입니다.
하만은 들어내는 과시형이라면 모르드개는 대궐 문에 앉아 있는 읍소형 아닌가요?
하만은 왕과 비슷해서 이기적인형이라면 모르드개는 이타적인형입니다.
자연 부딪칩니다.
그렇습니다. 하만이 육체로 난 성품의 모형이라면 모르드개는 성령의 성품입니다.
이 둘은 다툼이 있습니다.
롬8:5~7)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성경은 이런 경우를, 아브라함의 두 아들에게서 비유를 들었습니다.
이스마엘은 육체로 부터 난 아들이었고 이삭은 약속을 따라 난 아들이었습니다.
갈4:29) 그러나 그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니라
두 성품이 갈등하는 곳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누구든 온전해야 끝납니다. 갈등을 영적 전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잠시 후 하만에 의해서 유다인들이 죽게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니 이 전쟁은 혹은 이 갈등은 성도가 죽을때까지 겪는 일이기도 합니다.
분단의 국가에는 늘 티격태격하는 일들이 있듯이, 육체의 성품과 성령의 성품이 맞붙곤합니다.
이를 개인적으론 시험이라고 하여 "시험에 졌다." 혹은 "이겼다." 하기도 합니다.
사울은 진실되게 이 모양을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구원 받은 성도의 증표요, 성화되는 과정의 필연이기도 합니다.
롬7:20~21)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곡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롬7:23)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돈걱정은 합니다.
그렇다면 성도는 무엇이 있을까요? 이 갈등은 날마다 있어야 합니다. 성숙할 수록 시간마다 맞닫트리게 됩니다.
모르드개는 보혜사 성령의 모형입니다.
나중에 또 나옵니다만 말할 수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우리의 보혜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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