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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10:1~3, 안위한 시대 > 나의간증

에10:1~3, 안위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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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16-01-03 16:53 조회 2,429회 댓글 0건

본문

10장은 참 짧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성령은 이 장을 왜 나누셨을까 하며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 역시도 굳이 요약을 해야할까 하여 망설였습니다.
그런데 짧은 10장의 본문은 마치 장어의 꼬리 같습니다.
꼬리를 먹으면 장어 한 마리를 다 먹는다는 식의, 모르드개의 통치의 결국이 의미있게 담겨져 있습니다.
그 의미는 성령을 따라 산 결과적 모습입니다.
즉 성령충만의, 성도의 모습입니다.
롬2: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 인에게요 또한 헬라 인에게라

모르드개가 통치를 하니 국태민안이 왔습니다.
1절) 아하수에로왕이 그 본토와 바다섬들로 공을 바치게 하였더라
국가가 힘이 생겼고 재정적으로도 더 든든해졌다는 기록입니다.

3절) ~그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
배부르고 등 따뜻한 국가에는 갈등이 없습니다.
자연 민족간의 갈등도 없이, 태평세월은,, 이게 태평세월입니다.

중국에서는 이런 태평세월을 요순임금시대로 꼽는데, 요와 순임금의 이상 정치로서 백성들은 풍요롭고 여유로워 군주의 존재까지 잊고 격양가를 불렀답니다.
자신의 마음도 요동치기 쉽고, 한 가정도 지옥으로 만들기가 흔한데, 한 국가를 이렇듯 통치한다는 일은 여간 일이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열왕의 일기에 기록됩니다.
2절) 왕의 능력이 모든 행적과 모르드개를 높여 존귀케 한 사적이 메대와 바사와 열왕의 일기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국가의 주권자는 아하수에로왕이니, 왕의 통치가 선정으로 기록되는 것입니다.
그 선정에는 모르드개의 발탁과 위임도 포함되었으니, 매부좋고 누이 좋은 모양입니다.
모르드개도 보십시오, 대궐문에 앉아 오고가는 사람을 관조하며 낮소리와 밤소리를 듣던 한량(?) 이었지만,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3절)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존대하여 그 허다한 형제에게 굄을 받고~
이는 힘으로 된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 신의 열심으로 된 일입니다.
이런 경우 팔자가 달라졌다, 혹은 팔자가 폈다 합니다.

모르드개의 유일한 소유요, 장점은 무엇인가요? 지혜입니다.
잠2:15~17)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여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
물론 그 지혜의 으뜸은 하나님을 경외함 입니다.

10장의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성령충만한 성도의 삶입니다.
모르드개가 통치하니 왕도 좋고 백성들도 좋습니다, 그냥 좋은 것이 아니라 든든하고 평안합니다.
구원 받은 성도의 삶은, 내적 다툼이 있다가도, 비로써 성령을 따라 정욕을 죽이면, 이스마엘을 내쫓은 후의 아브라함의 집의 평강처럼,, 이렇습니다.
이 평강은 안식을 주어 세상과는 다릅니다.

성령충만은 성령의 세례와는 다릅니다.
성령충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녀로 사는 일이기 서신서가 그를 웅변합니다.
새로운 본성을 따라 이제는 억지가 아닌 자연스레 사는 삶입니다.
온유와 겸손의 성품을 갖고, 삶의 목적은 복음을 위해 합력(합당한 생활)합니다.
엡5:8~9)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었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이를 더 확대하면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령세례는 복음의 종된 은사입니다, 능력 받아야 주의 일 감당하기 때문입니다.
롬15: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악한 시대일수록 표적을 구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과 성령세례는 목적과 성격이 다르고, 순서는 없습니다.
그야말로 성령의 임의대로 하실 뿐입니다.

성령충만은 성령의 통치하에 있는 삶이기에,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한 삶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증거를 얻는 삶입니다.
성도가 사는 동안 최고의 목표는 여기에 있습니다.
죄는 여전히 있으나 그 죄의 권세와 위협에서 완전 해방된, 죄를 자의적으로 선택하지 않는 삶입니다.
전에는 유다인들이 어땠나요? 포로된 삶과 사망의 그늘에서 신음하고 고통했습니다.
왕은 어땠나요? 먹고마시는 일을 즐거워했고 하만이 끄는대로 인장을 내주어 사망의 법을 선포했습니다만,
지금은, 여전한 그들일지라도 삶의 모양이 달라진 것입니다.
어떻게요?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라" 왕(육)에 대한 죽음이, 모르드개의 위로 받기를 거부한 기도가, 유다 인들이 죽을 판에서 산 판이 되었고, 마침내 모르드개가 새 통치자가 되어 평안의 통치를 이룩한 결국입니다.

모르드개는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의 모형입니다.
주님은 외치셨습니다.
요7:37~39)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악한 세상과 흉악한 죄와 연약한 우리를 너무 잘아시는 주님께서 성령을 보내셨는데, 우리는 인정하지 않고자 합니다.

아직 주의 재림이 이루워지지 않았기에 영적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설령 성령충만했다할지라도 세상에는 죄의 실존이 아직 존재합니다.
천국갈 때까지, 모르드개이신 성령께 통치를 의탁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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