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9:1~38, 견고한 언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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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봉이란 도장찍고 내용물을 봉했다는 뜻인데 무슨 비밀이 있어서 일까요?
실제는 하나님께 언약을 세워서 드린 문서였습니다.
느9:38) 우리가 이 모든 이로 말미암아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우리의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다 인봉하나이다
그러므로 다음의 10장에는 그 인봉한 인물들이 기록되었습니다.
8장에서 이스라엘 민족들은 에스라학사로부터 잊혀졌던 율법책을 통해 참빛을 받았습니다.
배고팠다가 포식하면 어떨까요? 식곤증이 당연이듯 이들은 통회자백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시작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황폐한 소식을 듣고는 금식하며 통회자백한 결국이라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여하한 빛이 들어오면 어둠은 폭로됩니다.
느9:1) 그 달 스무나흗 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 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이 회개운동이 저절로나 인위적으로 된 일이 아니고 성령님의 활동으로 되어진 일입니다.
현대는 영성이나 성령운동을 일으키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바람은 아직 불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고 하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문을 유심히 대하면 그 은혜의 문턱까지 다다른 줄 믿습니다.
본문을 묵상할수록 개인적으로 사도행전 7장의 스테반집사 설교가 많이 닮았다고 여겨집니다.
하나님께 대한 고백이 온전해서 입니다.
6절)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7절)주는 하나님 여호와시라
9절) 주께서
32절) 우리 하나님이시여
온전한 호칭은 온전한 신론 아닌가요?
온전한 하나님의 지식과 믿음이 견고한 터전을 이루어 생활신앙이란 건축물을 견고케 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신앙고백 위에 세워졌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진부한 듯해도 확실해야 그후가 좋아집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존재와 구원역사를 온전히 알았습니다.
제사장들이나 혹은 제사장 아들들이 불량해서 제물을 먼저 취하거나, 거룩하지못한 불로 사르거나,
회막에서 수종들던 여인들과 덕스럽지 못한 행위가 왜 있었나요?
가문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존재와 구원의 역사를 믿지 못한 이유가 아닌가요?
그런데 이들은 넘쳤습니다.
4절) 레위 사람 예수아와 바니와 갓미엘과 스바냐와 부니와 세례뱌와 바니와 그나니는 단에 올라서서 큰 소리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고
5절) ~주의 이름이 존귀하여 모든 송축이나 찬양에서 뛰어남이니이다
6)절)~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9절)~그 밖에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11절)~깊은 물에 던지시고
12절) ~비추셨사오며,,
14절) ~선한 율례와 율법을 그들에게 명령하시고,
그 밖에도 많습니다.
그리고 자기 조상들의 죄와 허물을 알았습니다.
느9:26절) 그들은 순종하지 아니하고 주를 거역하며 주의 율법을 등지고 주께로 돌아오기를 권면하는 선지자들을
죽여 주를 심히 모독하였나이다
그 밖에도 많습니다.
회개나 반성이나 사죄에는 무엇에 대한 내용이 명시되어야 하고, 앞으로의 처신에 있어서도 내용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야 진정성을 인정 받을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견고한 언약을 드릴 수 있었다는 신뢰가 부럽습니다.
실제는 하나님께 언약을 세워서 드린 문서였습니다.
느9:38) 우리가 이 모든 이로 말미암아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우리의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다 인봉하나이다
그러므로 다음의 10장에는 그 인봉한 인물들이 기록되었습니다.
8장에서 이스라엘 민족들은 에스라학사로부터 잊혀졌던 율법책을 통해 참빛을 받았습니다.
배고팠다가 포식하면 어떨까요? 식곤증이 당연이듯 이들은 통회자백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시작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황폐한 소식을 듣고는 금식하며 통회자백한 결국이라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여하한 빛이 들어오면 어둠은 폭로됩니다.
느9:1) 그 달 스무나흗 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 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이 회개운동이 저절로나 인위적으로 된 일이 아니고 성령님의 활동으로 되어진 일입니다.
현대는 영성이나 성령운동을 일으키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바람은 아직 불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고 하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문을 유심히 대하면 그 은혜의 문턱까지 다다른 줄 믿습니다.
본문을 묵상할수록 개인적으로 사도행전 7장의 스테반집사 설교가 많이 닮았다고 여겨집니다.
하나님께 대한 고백이 온전해서 입니다.
6절)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7절)주는 하나님 여호와시라
9절) 주께서
32절) 우리 하나님이시여
온전한 호칭은 온전한 신론 아닌가요?
온전한 하나님의 지식과 믿음이 견고한 터전을 이루어 생활신앙이란 건축물을 견고케 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신앙고백 위에 세워졌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진부한 듯해도 확실해야 그후가 좋아집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존재와 구원역사를 온전히 알았습니다.
제사장들이나 혹은 제사장 아들들이 불량해서 제물을 먼저 취하거나, 거룩하지못한 불로 사르거나,
회막에서 수종들던 여인들과 덕스럽지 못한 행위가 왜 있었나요?
가문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존재와 구원의 역사를 믿지 못한 이유가 아닌가요?
그런데 이들은 넘쳤습니다.
4절) 레위 사람 예수아와 바니와 갓미엘과 스바냐와 부니와 세례뱌와 바니와 그나니는 단에 올라서서 큰 소리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고
5절) ~주의 이름이 존귀하여 모든 송축이나 찬양에서 뛰어남이니이다
6)절)~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9절)~그 밖에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11절)~깊은 물에 던지시고
12절) ~비추셨사오며,,
14절) ~선한 율례와 율법을 그들에게 명령하시고,
그 밖에도 많습니다.
그리고 자기 조상들의 죄와 허물을 알았습니다.
느9:26절) 그들은 순종하지 아니하고 주를 거역하며 주의 율법을 등지고 주께로 돌아오기를 권면하는 선지자들을
죽여 주를 심히 모독하였나이다
그 밖에도 많습니다.
회개나 반성이나 사죄에는 무엇에 대한 내용이 명시되어야 하고, 앞으로의 처신에 있어서도 내용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야 진정성을 인정 받을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견고한 언약을 드릴 수 있었다는 신뢰가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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