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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13:1~31, 다시 그리로 > 나의간증

느13:1~31, 다시 그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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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용범 작성일 21-08-17 10:31 조회 1,08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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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는 파샤국의 파견 관리로서 12년동안 유다 지방의 총독 일을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파샤국을 다녀왔는데 여러 상황이 전과 같지 않았기에 다시 바로 잡는 노력을 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며 죄의 관성이란 기회만 되면 어떤 명분이든지 앞세워 침범하고 갉아먹는 특성이 있습니다. 
총독을 비웠던 그 1년,,무슨 일이 있었을까 마는 여러일들이 있었습니다. 
암몬과 모합 사람들과의 혼합이 있었습니다. 이런 일은 진작에 근절했던 것이기에 저들을 다시 분리했습니다. 
느13:3) 백성이 이 율법을 듣고 곧 섞인 무리를 이스라엘가운데서 모두 분리하였느니라 

도비야라는 유쾌하지 않은,, 반대적인 원수의 일을 꾸미고 산발랏과 앞장 섰던 실세(?)가 성전 뜰 방을 차지했습니다. 이는 괘씸을 떠나서 하나님의 모욕이기에 느헤미야가 직접나서서 방을 뺏어 "다시 그리로" 했습니다. 
느13:8~9) 내가 심히 근심하여 도비야의 세간을 그 방 밖으로 다 내어 던지고 명령하여 그 방을 정결하게 하고 하나님의 전의 그릇과 소제물과 유향을 다시 그리로 들여놓았느니라 
그럴 수 있다며 방을 들였던 군상들과,, 그 일을 심히 염려하며 방을 뺀 느헤미야는 같은 시대의 같은 지역의 같은 민족이고 같은 신앙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다릅니다. 이는 성숙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결의 문제였습니다. 
잠언서는 이런 경우를 위해 많이 기록해 놓았습니다. 
잠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본래 사람이 잘 잊는 존재라도 오랫동안 포로되어 갓 귀환했던 이스라엘 민족이,, 고작 1년 전의 광장 수문앞에서의 회개와 성벽 중수의 봉헌을 잊었다는 것이 낯설지 않습니다. 
 이제는 성전 봉사자인 레위인들을 박대했기에 제사가 홀대되는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느13:10) 내가 또 알아본 즉 레위사람들이 받을 몫을 주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직무를 행하는 레위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각각 자기 밭으로 도망하였기로 

왜 밭으로 도망했을까요? 먹고 살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입니다. 
세상에 아주 못된 말이 있습니다. 기업은 열정페이, 교회는 소명페이,, 둘 다 착취의 고상한 거짓말입니다. 
되레 기업은 격려페이,,교회는 은혜페이로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안식일 준수가 해이해졌기에 바로 잡았고 근절된 통혼도 또 생겨 다시 세웠습니다. 
느13:28) 대제사장 엘리아쉽의 손자 요야디의 아들 하나가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으므로 내가 쫓아내어 나를 떠나게 하였느니라 

총독이라도 대제사장의 손자를 쫓아내는 일은 자칫 저항을 일으키는 일입니다. 
특히 산발랏의 사위가 되지 않았나요? 그러나 그는 드디어 바로 잡았기에 하나님앞에서 탄성을 불렀습니다. 
느13:29) 내 하나님이여 그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더럽히고 제사장의 직분과 레위 사람에 대한 언약을 어겼사오니 그들을 기억하옵소서 

마지막으로 제사장과 레위사람들이 반열에 따라 각자의 일을 맡게하며 예물도 정한 기한에 처음 난 것으로 드리게 했습니다. 흩어졌던 것을 다시 제자리로 옮겨 제자리에서 제기능을 하게한 것입니다. 
누구는 이를 느헤미야의 개혁이라지만 부흥이 맞는 듯 합니다. 개혁은 제도나 기구 따위를 새롭게 뜯어고침이라면,, 느헤미야는 새로 뜯어 고침 보다는 다시 일으키고자 했기 때문에 다시 흥한다는 부흥이 나을성 싶습니다.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때에 팠던 우물을 다시 파는 일이 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새로움이 없어서 일까요? 아버지가 팠던 우물에는 물이 있다는 확실성때문은 아닐까요? 
현대는 자꾸만 덧칠하고 덧칠해서 본질을 잃는 유감이 있습니다. 
감자탕에 깻잎을 많이 넣으면 감자탕이 아니라 깻잎탕이 되는데도 감자탕이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적이고, 세상적이고, 자본적인 것은 다 걷어 치우고 다시 사도행전교회처럼 내 교회나 우리 교회가 아니라 성령의 교회로 거듭나서 전세계를 품고 미래로 나가야 합니다. 

복음이 성경적 복음이고, 교회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건물중심이 아닌 성령중심의 교회가 되고, 목사 장로 성도도 계급이나 명예가 아닌 은사와 주의 부르심에 순복하여 지체로써 충성하는, 예배도 공연이나 강연이 아닌 하나님께 향한 열심이 특심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 때가 올까요? 
느헤미야는 그 소원과 수고가 있었기에 마침내 감동과 감사가 따랐습니다. 
느13:31) 또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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